자동차 정보 이슈 채널 - 루이 셰브럴레이(나 자신은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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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보 이슈 채널 - 루이 셰브럴레이(나 자신은 팔지 않는다.)

쉐보레 콜벳

미국의 상징

 1936년에서 1976년까지 쉐보레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브랜드의 자리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쉐보레는 이러한 실적을 다지고 유지하기 위해 줄곧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유사해야만 했다. 이러한 전략은 1918년에 강력한 V8 모델인 모델 D를 내놓으면서 시작됐고, 소비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은 번쩍이는 디스크 휠과 셀룰로오스 페인트를 불과 625달러에 선택할 수 있었던 1925년형 슈피리어를 통해 확고해졌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조립된 첫 GM의 차도 쉐보레였는데, 1924년 1월에 코펜하겐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트럭이 바로 그것이다. 이차는 GM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1930년대를 거치면서 쉐보레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종류의 차를 내놓음으로써 시장에서 선두 위치를 확실히 했고, 1941년까지 스테이션왜건에서 컨버터블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1950년에는 자동 변속기가 쉐보레 자동차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은 1955년에 쉐보레가 선보인 스몰 블록 V8엔진이었다. 스몰 블록 V8엔진은 역대 V8 엔진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수백만 기가 만들어졌다. 작은 V8엔진은 스포츠카 콜벳을 빈약한 성능을 내는 자동차에서 도로 위의 로켓으로 바꾸며 회사에 막대한 부를 안겼다. 1953년에 나온 이 독창적인 로드스터는 양산차에 유리 섬유 차체를 도입한 것은 물론 V8엔진을 이식해, 현재 6세대 모델까지 이어지며 사랑받는 미국 대표 자동차로 자리 잡았다. 미국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절대 잘못될 리가 없는 회사로 여겨지던 그때, 1960년형 콜베어라는 재앙이 쉐보레에 밀어닥쳤다. 폭스바겐 비틀을 흉내 내 차체 뒤쪽에 얹은 콜베어의 엔진 때문에 차 뒤쪽이 무거워져서, 사고로 이어진 것은 물론 소비자 단체로부터 쉐보레가 결함을 알고도 자동차를 출시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격분을 접한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결국 안전벨트, 충격 흡수 차체 구조, 에어백과 같은 안전 장비들을 의무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쉐보레는 풀 사이즈 임팔라, 소형차 쉐벨, 스타일이 돋보이는 몬테 카를로 쿠페, 엘 카미노 픽업, 우람한 오프로더 블레이 저등을 통해 미국 자동차의 전형을 확립했다. 다른 미국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쉐보레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경제 위기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1980년대에 고연비 자동차를 내놓기 위해, 쉐보레는 이스즈, 도요타, 스즈키 등의 소형차를 수입하거나 합작 투자를 통해 생산하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전략은 2001년에 GM이 한국 대우 자동차의 지배 지분을 인수하고 대우의 수출용 소형차 모델에 쉐보레 브랜드를 사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GM이 막대한 부채를 지고 파산하면서 쉐보레는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개입해 GM의 지배 지분을 관리하면서 쉐보레는 살아남았다. 셰브럴레이는 경쟁력 있는 레이싱 카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했지만, 1941년 6월 6일에 가난으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했고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혔다.